Est. Unipair 2008.

Anderson and Sheppard Trunkshow in Unipair

Anderson and Sheppard Trunkshow in Unipair
2019년 11월 6일
In Our Journal

유니페어는 지난 10년간 유고한 역사를 가진 슈메이커를 국내에 소개해왔습니다. 클래식웨어에 대한 깊은 애정은 구두 컬렉션은 물론 액세서리와 의류, 그리고 여러 사르토의 트렁크쇼 개최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왔습니다. 많은 한국 남성들에게 정통 슈메이커와 클래식웨어에 대한 문화를 소개하고자 했던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올해 초부터 준비했던 이벤트를 소개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랜 남성복의 역사에서 1930년대만큼 찬란하고 뛰어난 취향을 보여주는 때는 없었으며, 당시 스타일을 선구하는 사람들은 앤더슨 앤 셰퍼드(Anderson and Sheppard)를 입었습니다. 새빌 로(Savile Row)의 정통 비스포크 수트 메이커인 앤더슨 앤 셰퍼드는 1906년 창립 이래로 1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졌습니다. 뚜렷한 하우스 스타일을 가진 앤더슨 앤 셰퍼드는 현재까지도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시대의 흐름에 맞춘 RTW컬렉션도 함께 선보이고 있습니다. 홍콩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한국에서는 최초로 진행되는 앤더슨 앤 셰퍼드 트렁크쇼는 다가오는 11월 29일과 30일에 유니페어에서 트렁크쇼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영국 비스포크 테일러를 대표하는 브랜드를 유니페어에서 소개하게 되어서 영광으로 생각되며, 유니페어에서 전하는 특별한 앤더슨 앤 셰퍼드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History Begins

 

앤더슨 앤 셰퍼드의 시작에는 프레드릭 숄트(Frederick Scholte)가 있었습니다. 새빌 로에서 일하던 숄트는 오늘날 런던 컷(London Cut)혹은 잉글리시 드레이프(English Drape)라고 알려진 스타일을 정립시킨 테일러입니다. 숄트는 군복 재단을 하는 존스 앤 페그(Johns & Pegg)에서 재단사(Cutter)로 훈련을 받았으며, 벨트가 있는 가드즈맨 코트(더블 브레스티드 코트와 유사한)의 실루엣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잉글리시 드레이프는 가드즈맨 코트의 군복적인 요소를 없애고 실루엣을 해체해 부드럽게 만드는 작업에서 만들어진 형태입니다.

코트(정통 새빌 로 용어에서는 ‘자켓’을 뜻함)의 ‘드레이프’란 어깨에 걸치는 방법을 뜻합니다. 숄트의 코트는 가슴과 어깨뼈 부분에 여유가 있어 공간감이 있으나 부드러운 드레이프를 지녔습니다. 소매의 윗 부분 역시 여유가 있어 넓게 움직이기에 용이한 것이 특징입니다. 숄트의 스타일은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군복 재단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처음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제자였던 피터 앤더슨(Peter Anderson)은 1906년에 동업자 Mr. Simmons와 앤더슨 앤 시몬스(Anderson&Simmons)를 설립하게 됩니다. 이후 1909년에 자신의 지분을 바지 재단사(Trouser Cutter)인 시드니 호라시오 쉐퍼드(Sidney Horatio Sheppard)에게 판매해 회사의 이름을 앤더슨 앤 셰퍼드로 변경하게 됩니다. 

(좌) Peter Sheppard / (우) Anderson and Sheppard Sign

숄트의 스타일을 발전시킨 앤더슨 앤 셰퍼드와 ‘소프트 룩(Soft Look)’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스타일 아이콘이었던 윈저공(Duke of Windsor) 덕분이었습니다. 1924년 미국의 Men’s Wear Magazine은 윈저공에 대해 ‘미국의 평범한 젊은 남성들은 지구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 윈저공의 옷에 더 관심있어 한다.’라고 쓸 정도로 그는 당대 최고의 패션 아이콘이었습니다. 윈저공은 그의 자서 ‘A Family Album’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나의 아버지와 그의 세대는 프록 코트와 보일드 셔츠에만 묶여 있었다. (중략) 언제든 혼자 있게 되면 나는 코트를 벗고, 타이를 풀어 셔츠 깃을 낮게 만든 다음 소매를 접어 올렸다. 편안하기 위해서가 아닌 자유를 향한 상징적인 제스처였다.’

(좌) Duke of Windsor / (우) 그의 저서 A Family Album (사진 출처 : Google Image)

몸에 딱 맞게 형태를 잡는 셔츠와 코트 그리고 장식적인 의복에 늘 지쳐있던 윈저공은 숄트의 부드럽고 편안한 수트에 매우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플란넬부터 해리스 트위드, 핀 스트라이프에서 디스트릭트 체크까지 모든 소재와 패턴의 옷을 앤더슨 앤 셰퍼드에서 제작하게 됩니다. 윈저공으로부터 시작된 앤더슨 앤 셰퍼드의 하우스 스타일은 이후 입소문을 타고 퍼지기 시작합니다. 1920년대 최고의 극연출가였던 아이버 노벨로(Ivor Novello)와 노엘 카워드(Noël Coward)는 잉글리시 드레이프 스타일의 초기 고객이었습니다. 영화 역사상 최초의 섹스 심벌로 알려진 루돌프 발렌티노(Rudolph Valentino)를 시작으로, 프레드 아스테어(Fred Astaire), 클리프턴 웹(Clifton Webb), 더글라스 페어뱅크스(Duglast Fairbanks Sr.)까지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자신만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제작된 앤더슨 앤 셰퍼드 수트를 입었습니다.

(좌) Fred Astaire / (우) Noël Coward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의 Measure Book(고객의 정확한 신체 수치와 각종 정보를 기록함)은 당시의 흥미로운 패션 흐름을 잘 보여줍니다. 각 유명인들의 Measure Book이 이후의 고객들에게 뛰어난 참고 자료로 사용된 것이죠. 영국 주재 미 대사이자 유명 폴로 선수였던 존 휘트니(John Whitney)는 프레드 아스테어의 Measure Book을 참고해 그의 수트를 제작했습니다. 1930년대의 남성들은 스타일을 만드는 사람들이었고, 앤더슨 앤 셰퍼드에서 그들의 스타일을 찾았던 것이었죠.

Anderson and Sheppard Maesure Book

 

 

 

The Craftmanship

앤더슨 앤 셰퍼드의 수트는 기계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전통은 창립 이래 계속해서 이어져오고 있는데, 아버지를 따라 앤더슨 앤 셰퍼드에 입사해 45년 동안 근무했던 데니스 홀버리(Dennis Hallbery)의 말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Dannis Hallbery (사진 출처 : Google Image)

 

“스웨덴에서 테일러들은 여러 농가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많이 합니다. 농부들이 양의 털을 깎으면, 농부의 아내가 직물을 짜서 완성된 직물은 솜씨 있는 테일러의 손에 맡겨지죠. 이 테일러는 농부를 위한 수트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저의 할아버지, 삼촌 그리고 아버지 모두가 이 전통을 따랐습니다. 농가의 테이블에 앉아 쉬지 않고 바느질을 하는 것이죠.”

1920년대와 30년대에는 앤더슨 앤 셰퍼드의 대다수 테일러들이 스웨덴 출신이었는데, 스웨덴 테일러의 정신을 이어받은 그들은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하며, 이 정신은 앤더슨 앤 셰퍼드 하우스에 현재까지 계속해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손 바느질로 만들어진 비스포크 수트의 부드러운 선과 뛰어난 디테일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습니다. 앤더슨 앤 셰퍼드의 고객 중 몇몇은 아버지에서 아들, 그리고 손자까지 약 3대에 걸쳐 비스포크 수트를 물려 입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수트를 아들이 고쳐 입고, 손자는 할아버지의 수트를 해체해 다시 제작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죠. 비스포크 수트 한 벌에 담긴 스토리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으며 대를 이어 전승되는 하나의 역사가 됨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다가오는 11월 29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는 앤더슨 앤 셰퍼드 트렁크쇼는 예약제로 진행되며, 자세한 내용은 유니페어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 02-542-0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