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 Unipair 2008.

World Championships in Shoemaking

World Championships in Shoemaking
2018년 7월 20일 unipairguy
In Our Journal

전세계에서 명성을 떨친 슈메이커들이 만든 30개의 옥스포드중 상위에 입상한 3개의 옥스포드를 소개합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Shoemaking 월드 챔피언쉽에서 수상한 신발들의 실질 심사 내역을 공개합니다. 4월 7일에 열린 London Super 트렁크 쇼는 Shoegazing과 Shoe Snob이 주최한 첫 번째 Shoemaking 월드 챔피언십입니다. 대회는 온라인 업체 Kirby Allison의 Hanger Project, 도서 프로젝트인 Master Shoemakers, 그리고 개인 사업자 Edmund Schenecker와의 협력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우승자에게 3,000파운드, 2위는 2,000파운드, 3위는 1,000파운드의 상금을 수여했습니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3개의 구두는 최대한 많은 신발 애호가들에게 전시되기 위해서 전세계를 투어하며 전시될 예정입니다. 예비 투어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5월 7일-20일 Leffot NY 미국, 뉴욕
5월 28일-6월 10일 Leffot Chicago 미국, 시카고
6월 18일-7월 1일 Kevin Seah 싱가폴
7월 9일-22일 Unipair 서울, 한국
7월 30일-8월 12일 Medallion Shoes 베이징, 중국
8월 20일-9월 2일 Prologue 홍콩
9월 10일-23일 Skoaktiebolaget 스웨덴, 스톡홀름
10월 1일-14일 Isetan Men’s 도쿄, 일본
10월 22일-11월 4일 Skomaker Dagestad 오슬로, 노르웨이
11월 12일-25일 Brogue Shoes 제네바, 스위스

 

London Super 트렁크 쇼에서 모든 참가자들의 신발이 전시되었고, 낮 동안 800명 이상의 인원이 방문했습니다. 오후에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10개의 신발이 전시되었습니다.  익명의 심사위원들은 대회 전날 모든 구두를  평가했습니다.

 

대회 심사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플레인 캡 토 옥스포드 모델(최소한 세 개의 가죽 조각을 사용하고, 인조 스티치가 있는 홀컷 금지)

– UK 8 사이즈의 왼쪽 신발 한 짝

– 어퍼는 검정색 박스 카프 사용

– 싱글 레더 아웃솔

– 손으로 꿰매거나, 직접 만든 아웃솔을 부착해야함

– 뒷굽과 엣지는 검정색이며, 아웃솔 바닥은 자연적인 색

– 브랜드 표기 금지

– 심사위원들에게는 슈트리나 라스트 없는 신발이 보여져야 함(슈트리가 포함된 경우 전시가 열리는 동안에만 장착될 예정)

참가자들은 회사 혹은 개인 자격 모두로 참가 가능. 신발 메이킹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명시되어야 하며, 여러 명의 경우 각각의 참가자가 어떤 과정에 참여했는지도 명시되어야 함.

 

심사위원들이 평가하게 되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난이도(최대 10점)

심사위원은 사용된 메이킹 방법이 얼마나 정교한지와 슈메이커가 크고 작은 디테일들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를 평가합니다.

2)솜씨(최대 10점)

심사위원인 구두 공정의 다양한 과정들이 얼마나 잘 이루어졌는지, 각 작업이 얼마나 정확하고 깔끔하게 이루어졌는지, 피니싱의 정도가 얼마나 잘 마무리되었는지에 대해서 평가합니다.

3)디자인/ 미적감각(최대 5점)

심사위원은 구두, 비율 등의 전반적인 미적감각을 평가합니다.

 

다음은 모든 참가작들을 검토한 후에 발표된 1등부터 10등까지의 수상자의 리스트입니다.

1. Patrick Frei Maßschuhe
2. Daniel Wegan
3. Philippe Atienza
4. Wataru Shimamoto
5. Fumiya Ando
6. Andreas Reijers
7. Kiyo
8. Christophe Algans
9. Christophe Corthay
10. Calzoleria Carlino

 

Patrick Frei

 

첫 Shoemaking 월드 챔피언은 독일의 Patrick Frei입니다. 그는 구두를 온전히 혼자 만들었는데, 시간은 160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아주 멋진 슈트리도 40시간이 걸려 완성했는데, 슈트리 전체는 Frei가 20시간에 걸쳐 제작했고, 슈트리 핸들은 전문 바이올린 메이커가 20시간이 걸려 제작했습니다. (슈트리는 전시용일뿐, 심사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구두는 다른 어떤 구두보다도 박물관에 전시된 멋진 작품처럼 보입니다. 구두는 UK 8사이즈의 길이이지만, 굉장히 좁은 웨이스트와 매우 슬림하고 깔끔한 라인을 가진 우아한 블랙 플레인 캡 토입니다. 사실 Frei의 구두는 감상용으로, 신을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shoemaking컨테스트 역시 착용성은 필수가 아니었죠.) 아웃솔 스티치 역시 16 spi(인치당 스티치)로, 비교적 둥근 엣지를 가집니다. 완벽하지 않은 몇몇 부분이 보이긴 하지만, 마감 역시 잘 만들어졌습니다. 구두의 내부도 섬세한 디테일과 정교한 패턴으로 완벽하게 만들어졌죠.

앞서 언급한 좁은 웨이스트는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처음 구두를 봤을 때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을 겁니다. 이 부분은 매우 얇은 엣지를 가지고 있는데, 눈에 띄게 높은 작업 난이도와 뛰어난 솜씨를 결합했습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것은 각기 다른 세 가지 요소였습니다. 첫 번째는 굽으로, 20개의 얇은 굽들을 적절하게 쌓아올려 만들었습니다. 굽을 쌓아 올리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Patrick Frei는 눈으로 보기에 깔끔하고 훌륭한 엣지 피니싱을 내는 오래된 빈티지 가죽 아웃솔을 사용했습니다. 두 번째는 굽에 박힌 못의 패턴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못이 사용된 양 뿐만 아니라 아주 곧게 못질된 부분이 매우 놀랍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것은 토-탭입니다. 손으로 직접 윙팁 모양을 재단하여, 아웃솔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Patrick Frei의 구두는 아웃솔을 뜨거운 쇠로 태워, 그가 계획했던 것보다 더 갈색이 되는 바람에(심사기준에서는 자연색의 엣지를 명시함) 전체 점수에서 5%의 감점을 받았음에도 1등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자연색의 아웃솔을 요구하는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 아웃솔에 많은 작업을 했다 판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5%의 감점만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참가자는 10% 감점을 받았습니다.

Patrick Frei는 10년 넘게 구두를 만들었으나, 업계에서 알려진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국경 근처인 독일 남서쪽 끝에 위치한 Freiburg에서 자랐습니다. 그가 18살이 되었을때, 그는 길거리에서 저글링을 시작했고, 스페인과 모로코로 여행을 가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잠시 독일에 돌아왔을 때, 그는 남아메리카로 가서 스트리트 저글링 아티스트로 공연했고, 여러 도시와 나라를 여행했죠. 볼리비아의 코차밤바에서 그는 나이가 많은 공예가를 만났습니다. 공예가는 전통적이고, 무겁지만 매우 아름다운 트렁크와 여행 가방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Frei는 손재주에 재능을 보여, 기초적인 공예를 배웠습니다. Frei는 독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2005년에 독일에서 구두마스터의 견습생 자리를 얻어 5년 동안 배운 후, 자신의 공방을 엽니다.

나이가 어리고 자신감에 넘쳤던 Frei는 슈메이킹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바이에른 슈메이커 Heribert Dirrigl이 몇 가지 샘플 구두를 본 후에, 자신이 슈메이킹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수 년동안 오래된 구두 책과 신발을 모았고, 계속해서 유럽에 있는 유명한 슈메이커들을 방문했습니다. 그의 구두에서, 그가 오래된 빈티지 구두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작업실은 Freibrug의 Blackfores라는 도시에 위치해있으며, 가죽 세공인 Mathias Steinhauser와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Patrick Frei의 비스포크 구두는 5,000파운드(VAT포함)에서 시작하는데, 라스트 메이킹, 피팅용 구두, 슈트리 세 켤레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또한, 그는 월드 챔피언쉽에서 선보인 구두와 유사하게 만들어지는 Divine shoes(두 구두 모두 아트 슈즈이긴 하지만 Divine shoes는 신을 수 있음)라고 불리는 구두도 제작하는데, 기본적으로 모든 옵션을 추가할 수 있고 시간당 가격으로 지불해야 합니다. 이 구두의 경우 시작가격이 대략 13,000파운드 정도입니다.

 

Daniel Wegan

 

 

스웨덴 출신의 Daniel Wegan은 저명한 영국 브랜드 Gaziano & Girling 비스포크 부서의 총 책임자입니다. Wegan은 라스트와 전체 메이킹을 담당하고, G&G의 head closer인 Kay Anderson이 어퍼를 만들었습니다. 이 구두는 높은 굽이 매우 눈에 띄는데, 굽이 높았던 빅토리아 시대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습다. 미적으로 모든 사람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그 누구도 이 구두에 들어간 최고의 손재주와 높은 수준의 슈메이킹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Patrick Frei가 디자인과 난이도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솜씨 부분의 합계 점수는 Frei의 구두와 동점이었습니다. 특히 21spi의 아웃솔 스티치가 인상적입니다. 사실 스티치들이 얇은 실과 깔끔한 퍼징으로 만들어져서, London super 트렁크 쇼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조 웰트(스티치가 아닌 장식용 웰트)로 착각했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만들기 쉽고,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이와 같은 형태의 구두는 매우 정밀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완벽하게 균형이 맞춰져 쌓아올린 굽부터, 뛰어난 어퍼 마무리까지 모두 Kay Anderson의 솜씨입니다. 웨이스트는 보통 구두보다는 좁은데, 안 쪽에 숨겨서 꿰맨 웰트 역시 잘 마무리 했습니다. 아웃솔 스티치 부분을 제외하고, 메이킹은 Patrick Frei나 프랑스 슈메이커들의 예술적인 접근법과는 달리, 고객이 신을 수 있도록 잘 만들어진 비스포크 구두 형태입니다.

Daniel Wegan는 사실 비스포크 구두 업계의 신동 중 한 명입니다. 그는 구두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8년 전 영국으로 이주해, 런던과 노스햄턴에 있는 회사들에 지원했습니다. Gaziano & Girling에 입사 후, 그는 비스포크 부서에서 메이킹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얻고, 공장 청소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하려 노력했고, 얼마 후 비스포크 구두를 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밤낮 가리지 않고 그의 아파트에서 구두를 만들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비스포크 부서에서 정직원으로 채용되어, 라스트 메이킹을 배웠으며, 몇 년간 부서 매니저로 일했습니다. 비스포크 부서 책임자로 임명된 이후 그는 낮에만 회사에서 일을 하고, 저녁과 주말에는 G&G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며 “작은 공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아웃솔을 만듭니다. 사실 “작은 공장”은 그의 아파트인데, 주방을 포함한 네 개의 공간 중에 세 개는 작업 공간있습니다.

 

Philippe Atienza

 

Philippe Atienza가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한지는 몇 년 되지 않았지만, 그는 10년 넘게 프랑스 비스포크 구두 업계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구두의 모든 공정을 직접 만듭니다. 그는 전통적인 프랑스식 라스트 모양과 메이킹 방법을 결합했는데, 약간 특별한 패턴의 쿼터를 보면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Atienza의 구두는 1위와 2위의 구두만큼 우아하고, 단정하고, 섬세하다고(무조건적이어야 하지는 않지만) 보기는 힘들지만, 매우 견고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아웃솔 스티칭은 12spi이며, 매우 선명한 퍼징(퍼지휠이 스티치를 누르는데 사용되어서 웰트 윗 부분에 장식하는 패턴을 만들어 냄)으로 아웃솔 스티칭은 12spi이며, 조금은 넓은 엣지는 구두의 잘 만들어진 부분으로 보는 사람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이 부분은 비교적 단단한 굽 부분과 함께 웨이스트 부분에 짧게 자른 엣지와 아름답게 대조를 이룹니다. 아웃솔과 웨이스트가 처음에는 조금 평범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 부분이 이 구두를 멋지게 만들어주고, 매우 잘 만들어진 구두의 바닥이 됩니다.

Phillipe Atienza는 비스포크 슈메이킹의 진정한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1978년에 16살이었던 그는, Les Compagnons du Devoir에서 프랑스식 구두 제조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20살의 나이에 그는 종종 일을 맡았던 파리 외곽에서 교정용 신발 공방에 참여합니다. 이후, John Lobb 파리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 그는 스트라스부르와 마르세유에서 슈메이커 세션을 열었습니다. 존 롭에서 그는 공방 매니저를 맡았으며, 밑창 만들기와 마감 모두를 도맡아 했습니다. 그는 여성과 남성 구두를 만드는 비스포크 회사인 Massaro(샤넬이 소유한 회사)에서 이사 자리를 맡아 2006년 존 롭을 떠났습니다. 2년 후, 그는 파리 중심부에 공방을 둔 자신의 브랜드, Philippe Atienza Bottier를 시작했습니다

 

World Championships in Shoemaking에서 1~3위를 차지한 구두를 7월 22일까지 유니페어 본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